지구 소식
Rotary International District 3650
윤상구 前 총재(2004-05년도,새한양RC) 향년 76세로 별세
탁월한 로타리 리더이자 사업가인 윤상구 전 총재가 지난 8월에 췌장암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 차기 국제로타리 회장직을 사임하였으나 힘든 투병 끝에 9월 5일 별세하셨습니다.
프란체스코 아레조 RI 회장은 "윤상구 차기회장의 타계는 전 세계 로타리 가족에게 큰 손실"이라면서 "윤상구 전 차기회장의 엄청난 봉사, 비전, 그리고 로타리에 대한 기여는 앞으로도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오래 기억될 것이며 그의 유산은 로타리 친구들과 그의 헌신적인 로타리 봉사로 삶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쉬고 있을 것"이라고 추모하였습니다.
윤보선 대통령의 자녀로 태어나 서울에서 성장한 윤총재는 정치인의 길을 걸은 아버지와 달리 미국으로 유학해 시러큐스대학교에서 건축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습니다.
1980년대 후반 한국으로 귀국한 후, 윤상구 전 총재는 건축 자재를 개발·유통하는 동서코포레이션을 창립했으며,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둔 건설 호황 속에서 크게 성장했습니다. 이후 (주)영안을 설립해 부동산과 투자 분야로도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스테파니 A. 얼칙 국제로타리 전 회장은 "윤상구 전 차기회장은 정말 진실하고 관대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몇 년 전, 그녀의 조카가 영어 교사로 일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얼칙 회장은 윤상구에게 연락했고, 윤상구 전 차기회장은 그녀의 조카를 집으로 초대하여 그녀가 현지 문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얼칙 전 회장은 "그의 사려 깊음과 우정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부언하였습니다. 한국을 방문한 많은 로타리 회원들도 윤상구 전 총재의 환대와 사려 깊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87년 새한양로타리클럽 창립회원으로 로타리에 입회한 윤총재는 로타리를 지역사회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전문적인 네트워킹 허브로 여겼습니다. 처음부터 로타리 청소년교환을 홍보하는 활동에 참여했고 장학 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이러한 그의 관심은 평생에 걸친 봉사, 특히 국제봉사에 대한 열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윤총재는 8년간 '몽골을 푸르게' 프로젝트의 공동 위원장을 역임하였으며, 이 이니셔티브는 한국을 비롯해 몽골, 중국에 자주 영향을 미치는 미세 먼지를 줄이기 위해 고비 사막에 방풍림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결국 몽골 최대의 녹지 지대인 카라코람에 략적 과수원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확대되었으며, 이러한 성공은 몽골 정부가 사막화 방지를 위해 추가 조치를 취하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윤상구 전 총재는 이 혁신적인 프로젝트를 이끈 공로로 몽골 대통령으로부터 우정 훈장을 수훈했습니다.
몽골을 33번이나 다녀온 윤상구 전 총재는 "사막에서 나무가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우리는 성공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윤상구 전 총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를 여행하며 자신이 이끌거나 조직하는 데 도움을 준 아프리카, 아시아, 호주, 유럽, 북미, 남미에서 수행된 30개 이상의 로타리재단 보조금 사업 현장을 방문하였습니다.
윤총재는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의해 대영제국 훈장(OBE) 장교로 임명되었으며, 대한민국 대통령과 국무총리로부터도 공로 훈장을 수여받았습니다. 또한 윤보선기념사업회 이사, 서울스프링실내악축제 조직위원장, 유엔한국협회 이사로도 활동하였습니다.
윤상구 전 총재는 로타리에서 RI 이사와 로타리재단 이사로 활동했으며, 수많은 위원회의 위원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배우자 양은선 여사와 함께 로타리재단 베네팩터이자 고액기부자이며, 아치 클럼프 소사이어티, 폴 해리스 소사이어티, 유증회 멤버였으며, 로타리재단으로부터 공로 표창을 수상하였습니다.
윤상구 전 총재는 자신의 회장 임기가 로타리의 오랜 전통을 보존하고 확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했었습니다.
윤상구 전 총재는 2025년 6월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로타리 세계대회에 참석한 회원들에게 녹음된 연설을 통해 "저는 저 자신을 외로운 지도자로 보지 않고, 끊어지지 않는 튼튼한 사슬의 한 고리로 봅니다. 이 사슬은 저보다 먼저 온 사람들의 지혜와 헌신으로 만들어졌고, 오늘 저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힘으로 굳건히 지켜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윤총재는 한국 육군에서 복무했으며 안동장로교회 명예장로로도 활동하였습니다. 역사적 건축물에 대한 조예가 깊었던 그는 한국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힘썼으며, 19세기에 지어진 한국 전통가옥인 한옥에 거주하였습니다. 이 한옥은 한국의 현대사의 증인으로서 그의 부친은 이 한옥에서 국정을 운영하였습니다. 또한 이곳은 한국 민주화 운동의 본거지였으며 정치 활동가들의 피난처이기도 하였습니다.
유족으로는 양은선 여사를 비롯해 자녀 2명과 손자들이 있습니다.